지난해 여름, 뉴욕 여행을 갔을 때 꼭 일정에 포함시키고 싶은 장소가 '리틀 아일랜드'였다. 첼시 지구에 위치한 이 독특한 인공섬은 허드슨 강의 기둥 위에 있는 공원으로, '영국의 다빈치'라 불리는 토마스 헤더윅의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뉴욕의 랜드마크이다. 헤더윅은 인공과 자연을 융합해 전에 없던 도시 풍경을 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리틀 아일랜드는 그 정점에 있는 건축물이다.
동화 속으로 발을 딛는 기분이었다. 부두에 280개의 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그 위에 '튤립'이라 부르는 화분을 얹었다. 거기에 흙을 담고 나무와 화초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초록이 가득한 광장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어 누구라도 연주할 수 있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기꺼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느긋한 휴식을 즐긴다. 산책로를 오르내리다 보면 허드슨 강과 그 너머의 풍경이 펼쳐진다.
지루하지 않고, 따분하지 않다. 생동감과 상상력이 넘친다. 토마스 헤더윅의 건축을 설명하기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점점 더 궁금했다. 이 놀라운 아이디어로 가득한 건축가의 생각이 말이다. <더 인간적인 건축>(알에이치코리아)은 헤드윅을 공부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더 인간적인 건축>에서 헤드윅은 자신이 꿈꾸는 건축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또,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답게 앞으로의 건축과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를 '인간적인 건축'으로의 여정으로 안내한다. 그 여행의 과정은 우리가 건축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뒤집고, 국경과 문화, 분야를 초월해 영감을 불어넣는다. 이제 헤드위의 재미있고 도발적인 설명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도입부에서 헤드윅은 '인간적인 건축'을 발견했던 첫 순간을 소개한다. 1989년, 런던 킹스웨이 프린스턴 칼리지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헤드윅은 학생회관 매장에서 스페인 출신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책을 집어 든다.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 '까사 밀라(Casa Mila)'라는, 공동 주택 계획으로 디자인된 건축물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이런 건물의 존재가 가능하다니!
드윅은 세계를 다시 인간화하는 법으로 '달리 생각하기'를 강조라며 인간화 원칙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건물은 곁을 지나치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며 오랜 고민이 응축된 다양한 방안을 소개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 대해 "소리 없이 맹렬하고 열정적이며 임밀한 데다 법의학적 면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한다"고 극찬했다.
몇 년 후면 인간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헤드윅의 작품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시가 노들섬 국제공모 최종 당선작으로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을 선정한 덕분이다. 헤드윅은 노들섬이 가진 장소성을 최대한 살리고, 기존 건축물을 활용해 다양한 곡선형 연출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2027년 헤드윅이 디자인한 소리풍경이 어떤 즐거움을 줄지 기대가 된다.
현대적인 아파트 블록 같기도 원초적인 석재 조형물 같기도 했다. 다채로운 곡선이 춤추고, 추상적인 장식들이 꿈틀댔다. 헤드윅은 반복과 복잡성이 독특한 방식으로 조합된 까사 밀라에 경이감을 느꼈다. 33년 후 바르셀로나를 찾은 그는 젊은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건축물과 마주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물들은 까사 밀라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달리 너무나 정형적이다. 지난 100년간 직선적이고 삭막한 똑같은 형태의 건물들이 공간을 빼곡히 차지했다. 이보다 재미없을 수 없는, 설계한 사람도 살고 싶지 않을, 당장 철거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건물들 말이다. 비인간적인 건축을 야기한 새로운 발상의 혁명, 헤드윅은 이 현상을 '대재앙'이라고 말한다.
헤드윅은 '모더니즘'이라는 미명하에 지어지고 있는 수많은 획일적인 현대 건축물들에 대해 '따분하다'고 혹평한다. 그에게 따분함이란 '너무 평평하다, 너무 밋밋하다, 너무 직선적이다, 너무 반짝인다, 너무 단조롭다, 너무 익명적이다, 너무 진지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포스트잇인쇄 이 획일적 건축의 출발점이자 원흉으로 장식 폐지, 직선 중심, 대량 생산 추구를 주창했던 '르 코르뷔지에'를 지목한다.
헤더윅이 소개하는 따분한 건물들이 많은 곳 중 하나가 대한민국 아닐까.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고속도로 주변에 솟아있는 신도시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은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닭장과도 같다. 도시 내부로 들어가도 뻔한 건물들만 많고,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들은 없다. 그렇다면 따분함이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